구약말씀연재/창세기(GENESIS)

[하루말씀] 창세기 11장 27~32절

매일같은하루 2023. 6. 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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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나누기 앞서 9장 25-27절 말씀에 노아는 함이 행한 악행으로 인하여서 두 아들에게는 축복을 주고 함에게는 저주를 행했습니다. 특별히 26절에,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면서 셈에게만큼은 축복합니다. [하루말씀] 창세기 11장 27~32절

 

 

[하루말씀] 창세기 11장 27~32절

 

1. 성경본문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2. 오늘말씀

# 샘에게 허락된 축복을 통해 10:21절에 보니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 됩니다. 여기서에벨이라는 단어는 히브리라는 단어와 그 뜻과 뿌리가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셈은 ‘히브리’ 모든 자손의 조상이 되며 히브리사람인 아브람의 선조가 됩니다. (창 14:13)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셈에게 주신 축복을 통해서 장차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이 태어나게 하실 것이고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그 뿌리에서 메시아를 탄생하게 하실 것입니다. 특별히 셈의 아들은 다섯입니다.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입니다. 그중에 ‘아브람의 선조인 에벨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7대를 거쳐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까지 이릅니다.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아브람의 믿음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대로 노아가 죽은 후 그 후손인 셈과 함과 야벳은 온 땅에 흩어져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생겨진 문화는 하나님 중심의 신본적인 문화가 아니라 인간중심의 인본주의 문화가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뜻을 떠나 자기들의 유익을 만족시키는 여러 가지 우상숭배를 했을 것이고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만 사는 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만든 것이 바로 바벨탑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게 하는 심판을 주셔서 한마음으로 죄를 쌓던 무리들을 흩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숭배하는 악행이 멈추진 않았을 것이고 말이 통하는 자들이 모여서 자기들의 우상을 견고히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러할 것을 이미 아시고 후손 중에 하나님 안에 살 셈족을 구별해 놓으셨으며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중에서도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의 가정을 선택하십니다.

 

*데라의 고향은 28절에 기록된 대로, ‘우르’라는 지방입니다. 이곳은 티그리스강 주변에 위치한 곳입니다. 그런데 강주변이나 해안 주변에 무역로가 발달 한 곳은 문화가 발달합니다. 왜냐하면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혼합되어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곳우르는 인간중심의 삶이 지배된 곳이기 때문에 온갖 우상을 숭배하는 온상이 되어버립니다. 현대에 이르러, 고대 우르였던 바그다드주변에 우상신전이 발굴되었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바벨탑 형식을 본뜬 ‘지구라트’입니다. 특별히 ‘데라’ 이름의 뜻은 ‘야생염소’ 또는 ‘달’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데라라는 이름은 우르와 하란에서 널리 행했던 달숭배를 연상시키고 그것 때문에 그 이름이 영향을 받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수 24: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결국 데라는 셈의 가문에서 태어나서 자라난 모태신앙인이지만,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면서 달신을 숭배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있던 데라의 가정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셨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 됩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데라를 택하신 이유는 그의 사람됨됨이나 그가 셈의 가문이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택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택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받아 지금 예배당에 있는 이유도 우리가 잘났거나 못나서가 아니라 우리를 쓰임 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그 뜻에 따라 맞추어서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 사는 방법인 것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데라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어떤 인도함을 받느냐면 31절에,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한 것입니다. 사실 이 우르는 데라의 삶의 터전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가나안땅은 야만족들이 사는 미지의 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데라가 이 땅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간다는 것은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28절에 기록합니다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여기서 ‘죽었더라’의 원래 의미는 데라의 ‘면전에서 죽었다’는 뜻입니다. 아달 하란이 아비 데라의 눈앞에서 죽었습니다.

 

* 고대시대에는 각 지역에 섬기는 신이 있었습니다. 각 지역마다 장승처럼 그 마을을 지키는 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예로 전쟁을 할 때 우리 마을신이 다른 마을신보다 강한 신일 경우에 이 기준은 아마도 신이 어떠한 기적을 행했거나 인간의 요구에 적중한 것이 많을 때 강한 신이라고 여겼겠죠. 그래서 전쟁을 벌이지 않아도 우리가 이기는 전쟁이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하란이 우르에서 그리고 데라의 면전에서 죽었다는 사실은 갈대아 우르의 신을 하란이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법대로 신전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이유불문하고 가나안땅으로 출발했다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32절에 보니 데라는 205세가 되어 하란에서 허무하게 죽습니다. 그 이유가 31절 후반절에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려 했기 때문이라 기록합니다. 데라가 하나님을 믿지 못했더라도 어떠한 신을 막연히 믿었을 텐데 가고자 하는 길을 인간의 뜻으로 결정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은 데라를 죽이시고 이제 아브람을 통해서 다시금 역사를 세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아브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저버린 아버지 데라가 목적지 앞에서 허무하게 죽은 것 때문에 훗날 하나님께서 12:1절에,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하셨을 때 즉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분명히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순종할 때 우리 죽어 가는 인생이 생명가운데 있게 됨을 믿으시고 오늘 하루도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하며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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