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믿음의 증표를 갖고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믿음의 증표는 ‘할례’입니다. 할례 의식은 고대시대의 결혼식 의식으로 쓰였습니다. 이 할례를 함으로써 공동체가 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하루말씀] 창세기 17장 15~22절
이와 같은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할례를 원하신 것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살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래서 13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말씀합니다.
[하루말씀] 창세기 17장 15~22절
1. 성경본문
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20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21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2. 하루말씀
#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래의 이름도 바꿔주십니다. 사래의 이름의 원 뜻은 ‘나의 여주인’, ‘나의 공주’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사래는 한 가문의 여주인이 될 것이란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사래’에게 ‘사라’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사라는 ‘첫째가 되다’ ‘통치하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다시 말해 이 이름은 온 나라를 다스리는 왕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16절에,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람이 속으로 웃음을 터뜨립니다. (17절)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대체 어찌 출산을 할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상황과 너무나 맞지 않는 말씀이기 때문에 나온 헛웃음입니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상식선에서 생각을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사람은 이 생각의 한계를 극복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있어야 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곧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보니 아브라함에게 여전히 ‘확신’이 없음을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18절,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브라함이 생각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아브람함이 육적으로 낳은 아들 이스마엘을 통하여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19절에,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말씀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웃었다라는 의미에서 ‘이삭’이라고 이름을 지어주라 말씀합니다.
우리 크리스찬들 중에도 이 '이삭'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삭의 이름 그 자체가 ‘기쁨’ ‘웃음’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이삭’은 하나님 기준에서는 부모의 불확실한 믿음가운데서 주어지는 응답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불확실한 믿음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약속대로 아들 이삭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에 대한 축복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 축복은 20절 말씀대로,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 것이며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한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25:12-16절)에 이스마엘의 열두 두령의 이름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큰 나라가 되었고 알라를 섬기는 이슬람교를 창설해서 지금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이 땅에서만큼은 크고 강대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랍인들의 강성함과 부요함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멈춰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은 일방적인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1절에 우리 언약이라고 하시지 않고 “내 언약은”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되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의 부요한 인생 하나님의 나라를 벗어나서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자유를 멈추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상관있는 우리들은 심판날까지 믿음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말씀합니다. 이것은 이스마엘에게는 육적인 번성의 약속을 주시지만, 영적인 번성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나올 이삭과 세우리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에 이스라엘자손은 이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자손이며 예수님께서 이 아브라함의 자손의 족보가운데 나타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기록합니다. 여기서 ‘올라가셨더라’는 말씀은 히브리어로 ‘알라’라고 표현합니다. ‘알라’는 레위기에서 나오는 ‘번제’를 말하는 ‘올라’의 뿌리가 됩니다. 다시 말해,번제는 제물을 태운 연기를 하나님께 열납 하는 제사입니다. 그 연기를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때 ‘흠향하셨다’라고 표현하죠. 결국, 이 하나님의 올라가심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의 예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권위앞에서 엎드려 경배하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자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우리가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이 복된 삶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말씀을 듣고 말씀을 삶에 적용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을 깨달아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깨달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을 가지고 감사를 드리며 살 때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오늘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삶을 살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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