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말씀연재/요한복음(JOHN)

[하루말씀] 요한복음 2장 23~25절

매일같은하루 2022. 12. 27. 07:20
반응형

22절까지의 말씀은 ‘무질서한 성전을 예수님께서 뒤엎으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은 그렇게 하신 예수님께 요구하는 표적에 대해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이유는 제일 거룩해야 할 성전이 죄로 인해 무질서해졌기 때문입니다.

 

하루말씀
요한복음 2장 강해

 

요한복음 2장 23~25절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 유월절이 돼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곳곳을 둘러보셨습니다.

그런데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 사람들 때문에 성전안과 밖에서 가격을 흥정하느라 그야말로 시장바닥이 되었습니다이렇게 시장바닥이 되게 한 사람들은 바로 종교 지도자들과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 자기의 자리를 지켜야 되는 것보다 물질적인 것 셀 수 있는 복이 이들에게는 먼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질서는 세상의 질서와 다릅니다. 달라야 합니다.

먼저 세상의 질서는 내 자신을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돈과 명예와 권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질서는 내가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주인공이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가질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이 믿음으로 행해야 하는 것은 ‘사랑과 섬김’입니다. 그러나 지금 예루살렘성전은 그러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없고, 그래서 기도하지 않고 사랑과 섬김보다는 경쟁하고 빼앗고 죄를 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세상의 질서를 뒤엎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죠. 16절,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내 아버지의 집은 어떤 집이어야 할까요. (눅 19:46) 절에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그랬더니 제사장들과 장사꾼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항의합니다. 18절,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표적’은 명확한 사실에 근거한 ‘기적’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말해서, 예수님의 대적자들은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봐야만 믿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구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런 능력이 전혀 없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궁지로 빠트리려는 계획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19절에,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말씀하십니다. 이 예루살렘 성전은 46년 동안 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3일 동안 짓겠다는 말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믿지 못할 아주 황당한 표적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귀담아듣고 나중에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몰아 사형을 언도하는 근거로 사용하였습니다. (마 26:61)

 

# 여기서 말씀하신 성전은 예수님 자신의 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여기서 헐면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시겠다는 말씀을 비유적으로 풀어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예수님이 성전이 아니라, 여전히 돌로 세워진 성전입니다. 그래서 46년 동안 지어진, 이 성전을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표적만 내세우고, 표적만 요구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기록된 표적만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말하면서 아직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의 눈이 영적인 눈이 아니라, 이미 육적인 눈으로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말씀에 대해서 곁에 있는 제자들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여전히 예수님의 표적 때문에 예수님을 믿은 것이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표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부활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22절에 보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때 그때서야 이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23절에 보니, 예수님께서 유월절동안에 계속 예루살렘에 계셨습니다. 

계시면서 사람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표적을 보고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들은 초자연적인 것들이어서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무리 가운데 주님을 온전히 믿은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23절 후반절에, “그 이름을 믿었으나”라고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가 표적을 행함을 믿었으나 - 그들이 믿은 것은 한 인간에 대한 믿음이지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4절에 보니,

“예수님께서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다”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시고 그 속에 있는 것까지도 아시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아시고 계실까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믿을 뿐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들조차 믿는다라고 말할 뿐 그 속에 있는 믿음은 신실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 우리도 때로는 어떠한 신앙적인 체험과 간증이 있기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의 중요한 목적은 우리에게 주시는 응답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믿는” 이것이 전부가 될 때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보여주신다는 것을 믿으시며, 오늘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길 바랍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