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말씀연재/요한복음(JOHN)

[하루말씀] 요한복음 9장 1~12절 (JOHN 9:1-12)

매일같은하루 2023. 1. 1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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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신분을 네 가지 방법으로 말씀합니다. 사마리아여인에게는 “생수”를 주겠다 하셨고,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실 때는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고, 초막절 물 푸는 의식에서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하셨고, 빛의 예식에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9장 1~12절)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께서 "생명의 빛이심을 증명"해 보이십니다.

 

JOHN9:1-12
요한복음9장강해

요한복음 9장 1~12절 (JOHN 9:1-12)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 예수님께서 한 소경에게 주목하십니다.

1절에 보니,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한 소경에게 주목하십니다.  함께 길을 걷던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그 소경을 주목합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제자들이 이 소경을 묻고 이렇게 묻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스스로 그런 것입니까? 부모가 잘못해서 그런 것입니까? (출 34: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시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유대인의 문화에서는 사람이 고통을 겪는 것은 죄의 결과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합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으로 예수님께서는 3절에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소경으로 태어났다.  

 

*이 말씀은 이 사람이 태어날 때 하나님께서 소경이 되도록 고통을 주셨다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연약함을 갖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건강하게 보일 뿐 모두 건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연약하게 우리를 만드신 것은 우리의 연약함중에 하나님께 영광돌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되어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특별히 예수님 없이도 잘 살 사람들이 아닌 자기의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쓰러지고 넘어지고 낙망하는 사람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 이렇게 눈이 있어도 온전히 주님을 보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이 소경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를 택하시고 오늘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하십니다.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랑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통해 제자들이 이웃을 바라보고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소경을 주목하여 보실 때, 소경의 외모가 중요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형편과 필요에 먼저 관심 갖기보다,소경이 왜 소경이 되었는가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소경의 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앞을 못보는 소경의 내면입니다.  그래서 4절에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땅에 침을 뱉으시고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 예수님의 말씀은 조금 다급한 어조를 띠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낮일지 모르지만, 곧 밤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지만, 껌껌한 밤에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낮이 지나면 곧 밤이 오듯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낱이 많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고대시대에는 침이나 타액은 치유의 힘이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타액은 마술과 미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서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진흙을 사용하신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소경의 믿음이 성장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소경은 눈에 묻은 진흙을 물로 걷어냈습니다. 말씀에 직접 순종해보니 하나님께서는 소경에게 밝은 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진흙을 반죽하시므로 안식일에 일을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신 것으로 바리새인들을 가르치실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8절에 보니, 그 모습을 거기 있던 이웃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눈이 밝아진 소경에게 재차 묻습니다.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소경은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말씀대로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고 사실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가 어디 있느냐”물었으나 대답해 줄 수가 없없습니다.  왜냐하면 실로암못에 보내질 때에 그는 소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소경은 예수님께서 누구인지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눈이 떠진 사람이 되었으나 바리새인들은 반대로 영적으로 더욱 죽어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소경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응답받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매주 매일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듣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행하지 못할 때가  행할 때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그 증거가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행했지만 증인 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웃의 내면과 필요를 위해서 중보 하기보다, 여전히 외면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외적인 유익과 욕심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맡겨진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영혼이라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을 주셨습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즐기며, 외적인 것을 판단하는 눈이 아니라, 한 영혼을 긍휼 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뜻대로,  한 영혼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어서 예수님을 전하는 성도와 교회 되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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