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의 가족이 흉년에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에서 거류하였습니다. 이들이 모압으로 들어간 것은 단순히 육적인 배고픔이 아니라 영적인 배고픔을 모압이라는 이방땅에서 찾은 것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불의를 행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소견에 옳은 대로 하는 사사기의 결론과 같습니다. 룻기 1장
룻기 1장 15~22절 (RUTH 1)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하루말씀]
나오미의 가족이 행한 일은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결과입니다. 엘리멜렉의 가족이 모압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엘리멜렉이 죽습니다. 그리고 그의 두 아들이 모압 여자를 만나 결혼합니다. 그러나 만 10년이 되었을 때 두 아들도 돌연 사망합니다. 여기에서 나오미의 남편과 아들들이 죽은 이유를 찾아보자면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말씀을 등지고 주님의 뜻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모압으로 생명을 찾아 떠났지만 그곳에서 생명을 잃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생명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로 말미암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두 아들이 죽자 나오미가 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 소식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다시금 양식을 채우셨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통해서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생명이 공급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소식을 듣자마자 고향 베들레헴으로 출발합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면서 두 며느리에게 각자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두 모압출신 며느리에게 자신이 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는 남편도, 아들도, 손자도 없습니다. 그들이 나오미와 함께 한다면 평생 나오미의 노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는 그들의 젊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만약 이들이 자신과 헤어져서 집에 돌아가면 그들은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이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 축복을 기도하는 것이 가장 큰 선물입니다.
결국 며느리들은 울면서 시어머니 나오미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오르바는 나오미의 말대로 모압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섬기기로 결정합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다시 룻을 설득합니다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간다고 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그러나 (고집스러운) 룻은 자신의 입장을 아주 분명히 합니다. (16-17절) 내가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며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지금 룻의 이 고백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집은 모압이 아닙니다. 룻은 이제 모압사람이 아닙니다. 이제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를 떠날 수 없습니다. 만약 이 나라와 이 집과 내 부모를 떠난다면 내가 받아야 될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리 룻이 그런 결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현실은 가혹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모압여자는 여전히 이방인일 뿐입니다 게다가 나오미는 어려운 시기에 모압으로 도망갔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룻이 이런 중대한 결정을 한 것은
나오미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행하는 충동적인 결정도 아니고 또 하나님을 모압의 그노스와 동등되게 생각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룻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룻이 나오미를 향해서 선포한 이 믿음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예언이요 또한 약속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선포가 우리의 입술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또한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두 사람이 베들레헴에 거진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를 아는 사람들이 나오미를 쉽게 알아봅니다. 왜냐하면 나오미는 꽤 이름 있는 가문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오미의 행색은 빈궁했고 나오미와 함께 있는 여자는 모압사람입니다. 그러자 나오미가 그들에게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였음이라 “라고 말합니다. 나오미의 원래 이름은 ‘달콤한’ ‘유쾌한’의 이름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오미는 자신을 "마라"라고 부르라 합니다. 마라는 마라의 쓴 물에서 알고 있듯이 "쓰다" 혹은 "괴롭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렇게 자신을 망가뜨린 분이 바로 하나님이다라고 주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고난의 원인이 하나님께로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1절에 보면, 풍족하게 나갔지만 여호와께서 비어 오게 하셨고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나오미가 생각한 것 중에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오미를 돌아오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미의 인생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하나님의 대한 주권을 삐뚤어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베들레헴에 도착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또한 모든 인간들의 인생을 주관하시고 개입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관은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에서 사는 방법입니다. 이 믿음의 방법대로 살 때에만 주님이 주시는 복과 은혜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 앞에 겸손하며 우리의 중심이 주님 안에서 살므로 인한 평안이 넘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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