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말씀연재/요한복음(JOHN)

[하루말씀] 요한복음 16장 16~24절 (JOHN 16:16-24)

매일같은하루 2023. 2. 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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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유대교로부터 출교 당할 것입니다. 유대교인이 이방인이 되는 것은 부정한 일인데, 유대땅에서 부정한 것을 없애고자 목숨을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의 행동을 “그들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하십니다. 요한복음 16:16-24절로 이어갑니다. 

 

유대인들이 제자들을 핍박하는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8절의 말씀처럼,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 성령께서 오시므로 지금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심적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성령이 오시지 않더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15절,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JOHN16
요한복음16장강해

요한복음 16장 16~24절 (표준새번역)

16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 17  제자 가운데서 몇몇이 서로 말하였다. "그가 우리에게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게 되고, 또 조금 있으면 볼 것이다' 하신 말씀이나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 18  그들은 "도대체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 우리는, 그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다"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에게 물어 보고 싶어하는 기미를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게 되고, 또다시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 한 말을 가지고 서로 논의하고 있느냐?  20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근심에 싸여도, 그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21  여인이 해산할 때에는 근심한다.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22  이와 같이, 지금 너희는 슬픔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요,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23  그 날에는 너희가 내게 아무것도 3)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4)너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다.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이것은 너희에게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하루말씀]

오늘 16절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근심에 사로잡혔습니다. 근심에 빠진 이유는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 하는 말과 예수님께서 다시 돌아오신다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앞선 본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떠나면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제자들에게 계속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지금까지도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다시 오시는 것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성도를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스승을 잃고 슬픔에 빠진 제자들에게 평안하뇨 라며 말씀하신 부활의 주님은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평안과 회복의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예전 청년부 수련회에서 청년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중의 어떤 청년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내가 잘하나 못하나 지켜보시다가, 내가 못할 것 같으면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혜사로써 이미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돌아가실 때 제자들과 세상이 상반된 반응을 보일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20절에,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랬던 반응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에는 정반대로 이뤄졌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기뻐했으나 예수님을 미워하는 세상은 예수님께서 심판의 주로 오실 때 슬퍼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해산하는 여인의 비유를 통해 제자들의 애통하는 모습이 기쁨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해 주셨습니다.21절,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지금 당장은 염려와 근심으로 고통스럽지만 예수님을 다시 보았을 때는 그 고통이 사라져 기쁨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다시 사셨다는 사실 그 자체로 기쁨을 가져야 합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우리가 영원한 기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염려와 근심으로 죽은 사람처럼 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눅 20:38)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 살게 되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살게 되는 역사로,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성령님이 임하시는 날에 제자들이 더 이상 예수님께 질문하지 않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23절 후반절에,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신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기도를 마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응답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성령님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함께 기뻐하시고 성령충만함의 힘을 얻어 평안가운데 살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더욱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고전 2: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그리고 더욱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24절,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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